▣ 장기 같은 인생 _ 이천호 (복대동)
지난 41년이란 세월을 뒤로하고
정년 퇴직이란 현실 앞에 숙고한다
뚜벅뚜벅 장기 졸(卒) 거북이처럼
한 걸음 두 걸음 살아온 시절들
때로는 토끼 같은 말(馬)한테
힘들고 어려웠으나
의연한 상(象)이란 동료가
말(馬)을 정리해 주었었네
그로 인해 포(包)라는 역경을 넘고 넘어
차(車)라는 태풍을 잠재우니
궁궐 안 문지기(士)가 청하여
한.초(漢.楚) 왕(王)과 삶을 논하니
어찌 감회가 새롭다 아니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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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황톳길 _ 박인수 (수곡2동)
푸르름 더한 숲길에
길게 난 명품 황토오리길
오라 여긴 안마 황톳길
아하 여긴 체험 황토마당
비비추꽃 반기고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면
느티나무 등걸엔 매미가 합창일세
매앰 매앰 참매미 울음소리
쓰르르 쓰르르 말매리 울음소리
씨롱 매롱 애매미 울음소리인가
나지막히 걸어보는 명품황톳길
가는 길엔 몸 다듬어보고
오는 길엔 숲사이로 난
푸르른 하늘 보며
몸과 마음 더할 나위 없는 호사를 다 누리네
명품황톳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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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편지 _ 김성현 (가경동)
뜨거운 여름
하지만 우중충한 그 어느 날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나도모르게 창밖을 바라본다
금새 지나간 자리에 꽂혀있는 편지
비가내려 반쯤 젖어있던 편지
그 편지를 전달하는 집배원도
분명 등이 젖어있으리라
기다림의 미학이라 했던가
궂은 날씨 속에도 묵묵히
더운 날씨 속에도 묵묵히
그 편지를 전달하는 집배원도
분명 등이 젖어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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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과 미호천 _ 김종경 (오송읍)
내 사는 곳에서 60여 리
미호천, 무심천, 율량천 자전거길 따라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정겨운 벗 하나 살고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으로
환해지는 얼굴들
후일을 기약하고
물길 따라 내려오는 귀갓길
물총새와 억새풀과
둔치 파크골퍼 시니어들까지
너그리어 품어주는 미호천이
그 벗과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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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_ 박경애 (가경동)
좋은 나이, 좋은 계절에 결혼한 둘째 아들아. 축하한다.
네가 내 배 속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 엄마는 입덧이 심해서 고생을 많이 했었어. 12주쯤 됐을까. 신우신염도 앓았었지. 병원에선 치료 중 태아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난 목숨 걸고 너를 지키기로 마음 먹었지.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아준 걸까. 병원에서는 고열 때문에 수술이 불가하다고 하면서도 태아도 살릴 수 있도록 약물 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말이야. 한 달쯤 입원 치료를 마친 후 눈물로 기도하며 세상에 나올 너를 기다렸단다.
기도가 통했어. 더운 여름날, 넌 3.2kg의 건강한 아들로 세상에 나왔지. 이렇게 힘들게 태어난 네가 건강하게 자라 결혼을 해 독립한다니, 꿈만 같구나.
아들아. 지금의 좋은 감정이 퇴색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재미있게 살거라. 자식 낳아 키우다 보면 잠깐 사이 흘러가는 게 인생이란다.
건강을 잘 챙기며 살아라. 돈과 일에 노예가 되지 말거라. 부부가 행복하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단다. 거짓이 없이 살거라.
이젠 엄마는 너를 내 마음에서 완전 독립시키려 한다.
아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멋지게 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