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금속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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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구텐베르크 이미지

구텐베르크 http://www.gutenberg.de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는 귀족의 아들로서 독일 마인쯔에서 태어났다.

성은 겐스플라이쉬(Genafleisch)이지만, 그가 살았던 장원으로부터 구텐베르크란 이름을 땄다. 구텐베르크는 가족들과 귀족들 사이의 논쟁으로 마인쯔를 떠나 스트라스브르그(Strasbourg) 로 갔다.

여기에서 구텐베르크는 여러 가지 예술적인 기술을 익혔고, 인쇄를 시도했다. 마인쯔에 돌아온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을 완성하기 위하여 많은 양의 돈을 빌렸다. 책을 인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소를 세웠고 금속주조기, 양피지, 종이 등 인쇄에 필요한 기술과 재료를 확보하고 성서를 42행으로 인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3년 뒤에 완성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의지력, 미를 위한 그의 감정, 인쇄기의 발명에 대한 산물이였다.

인쇄기의 발명

인쇄기 이미지

요하네스 구텐베르그(1397-1468)는 인쇄기를 발명하여 금속활자 인쇄술이 등장하였다. 특히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 발명 이후에도 동양과는 다른 인쇄용 프레스를 도입하였고 20세기까지도 사용된 납과 주석, 안티몬을 합성한 제조방식도 고안했다. 또한 인쇄용 잉크 제조방식도 연구했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이미지

구텐베르크의 성서는 1452년에 시작하여 1455년에 완성됐는데, 이 성서는 한 페이지가 42줄의 2단으로 이루어져 「42행성서」라고 한다.

구텐베르크는 이 성서를 인쇄하기 위해 대·소문자와 약어, 복합문자와 마침표 등 290개의 다른 활자를 만들었으며, 활자 조판을 위해 적어도 10만 개의 활자를 주조했다.

구텐베르크 금속 활자는 납, 주석, 안티몬 등의 합금으로 이루어졌는데, 녹여낸 합금을 정교하게 제작된 활자 몰드(주형)에 부어서 만들었다. 주조된 활자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상자에 보관했다가 한 페이지를 찍는 데 필요한 것들을 뽑아 작은 나무틀로 만든 조판막대 위에 올리고 조판막대가 꽉 차면 교정쇠 위에 올려 묶어서 조판형태로 정돈했다.

구텐베르크는 검은잉크, 테레핀과 린시드유를 혼합해서 번지지 않는 잉크를 조합하기도 했다. 붉은색의 표제나 제목, 붉은색 또는 금색 장식과 유색 삽화는 나중에 인쇄소 밖에서 수작업으로 처리했다.

「42행성서」는 모두 180부를 인쇄하였으나,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모두 48부인데, 양피지에 인쇄한 것이 12부, 종이에 인쇄한 것이 36부가 남아 있다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영향

성서인쇄장면을 묘사한 그림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이후 약 500년 가량 거의 변함 없이 사용되었다. 활판 인쇄술은 그의 견습공들에 의해 1464년에 로마로 전파되었고, 1500년까지 유럽 260개 도시에서 인쇄가 진행될 정도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1500년에 당시 성서를 비롯한 종교서적, 그리스·로마의 고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보고서 등 수십만부의 책이 인쇄되었고, 유럽 바깥으로 전해진 활판 인쇄술은 1539년 멕시코, 1556년 인도, 1584년 페루, 1602년 필리핀, 1639년 미국, 1640년에 이란까지 전파되었다.

이 같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이전까지 소수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지식에서 소외되었던 대중 속에 급속히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역사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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